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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사] 1968년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미 군함 납북 사건' 북한군에게 포위당한 지 2시간 만에 포로로 붙잡히다? | 이제 만나러 갑니다 517 회
https://www.youtube.com/watch?v=z6LVmax9Njc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AGER-2) USS 푸에블로 가 1968년 1월 23일 동해상 원산 앞바다에서
조선인민군 해군 근위 제2 해군전대의 공격을 받고 강제 나포당한 사건.
승조원 83명 중에서 나포 도중 총격으로 1명이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82명이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훗날 미국으로 송환되었다.
푸에블로호가 나포당한 것은 미국이 북한군의 경계태세를 지나치게 얕봤기 때문이란 주장이 있다.
1950년대에는 북한 해군력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미군이 북한 해안을 제 집 드나들듯이 했고,
이게 자주 반복되니까 북한 근해를 가더라도 별다른 대비책을 준비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북한 측은 초계정 4척으로 푸에블로 함을 사방에서 포위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고,
미국 전투기가 구출하러 올 것을 대비해 전투기까지 출동시켰다.
1968년 1월 21일
나포 사건 불과 이틀 전에 북한군 특수부대원 30여명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다가 대부분이 사살당하고 김신조가 생포된 소위 1.21 사태가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중무장한 특수부대가 출현하고, 불과 이틀만에 동해에선 미 해군 함정이 나포당하면서 한반도 주변 정세는 그야말로 전쟁 전야를 방불케 하였다.
오랜 시간 지지부진한 협상 끝에 양측이 기묘한 합의를 이뤄냈는데
북한의 주장대로 문서에 미국이 영해 침범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대신,
미국은 서명전에 이 문서에 서명하는 이유는 오로지 '승무원 석방' 때문이어서 미국은 영해 침범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저지르지 않은 일에 사과를 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낭독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 대표인 길버트 우드워드 육군 소장이 미국의 반박 성명을 낭독한 후 문서 서명을 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나포 11개월 뒤인 1968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에 비로소 승조원 82명과 전사자 시신 1구는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다.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https://namu.wiki/w/%ED%91%B8%EC%97%90%EB%B8%94%EB%A1%9C%ED%98%B8%20%ED%94%BC%EB%9E%8D%EC%82%AC%EA%B1%B4
대장동, 성남FC, 백현동, 정자동, 법인카드, 변호사비 대납, 대북송금, 돈봉투, 불법코인 사건도 주범을 꼭 잡아야 합니다.
[국민감사] 1968년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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