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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사] 北의 백건우 윤정희 부부 납치 미수 사건(1977년♡)
70년대 셀럽 백건우♥윤정희 부부 북한으로 납치될 뻔하다! 배후는 김정일?! | 이제 만나러 갑니다 5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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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7월초 박인경이 윤정희 부부에게 접근하여, 스위스 취리히에 사는 <미하일 파블로비크>라는 거부가
고령의 부모를 위해 음악회를 열고자 하는데 백건우를 초청한다는 초청장을 전달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초청장의 수취인이 백건우가 아니라 박인경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백건우는 연주회가 취리히에서 열리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백건우가 바쁜 스케줄을 이유로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박인경의 말이 백건우를 추천한 자기가 난처하게 되었다고 하여,
하는 수없이 초청에 응하겠다고 하였다.
1977년 7월 29일, 백건우 윤정희 부부와 그들의 생후 5개월 된 딸과 박인경이 파리에서 비행기로 취리히에 갔다.
공항에 내리니 <파블로비크>의 비서라고 하는 여자가 대기하고 있다가,
초청자의 노부모가 현재 <자그레브> 근교 별장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비행기를 갈아타고 <자그레브>로 가야한다고 하였다.
백건우는 비자 없이 자기들이 어떻게 공산국가인 유고슬라비아로 갈수가 있느냐고 하니까,
그 비서라는 여자는 초청자가 이미 입국수속을 하였다고 대답하면서 <취리히>발 <자그레브>행 왕복비행기표를 건네주었다.
그때 윤정희는 생후 5개월 된 딸을 위하여 요구르트를 사러 갔는데
그 사이에 박인경과 그 비서라는 여자가 자리를 옮겨 흰 봉투 하나를 박인경에게 주었다.
그 속에는 박인경만 알아야하는 공작지령이 들어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여비서는 취리히에 남고 백건우와 윤정희와 그들의 딸과 박인경이 <자그레브>행 비행기를 탔다.
박인경은 누구인가 - <자그레브> 비행장에 도착하여 주위를 살펴보니, 그런 지방도시 작은 비행장에
<고려민항> 비행기 한 대가 눈에 띄었고 저쪽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여자 한사람이 있었는데
유독 그 여자만 어울리지 않게 썬 그라스를 썼고 흰 저고리에 검정색 동강치마를 입고 있어서
전형적인 북한여성의 옷차림이라고 직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목격한 윤정희는 대단히 불안하였고 긴장하였다고 한다.
윤정희의 예감이 맞았다. 그녀는 북한공작원 <허묵>과 함께 백건우 윤정희 납치공작에 참여한,
비엔나주재 북한대사관의 3등서기관 <이상준>의 처이며 이름은 <방화자>이었다.
그때 백건우가 마중 나온 사람이 있을 거라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는데
박인경이 취리히에서 그 여자비서로부터 받은 흰 봉투를 주었다.
봉투 속에는 <아미크>라는 이름과 주소, 그 집을 찾아가는 약도, 그리고 돈 800 디나르가 들어 있었다.
택시를 타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거부라고 하는 사람들이 국제적인 피아니스트를 초청해놓고
마중도 안 나오고 택시를 타고 오라니 그런 결례가 어디 있나. 백건우는 이상한 예감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택시를 타고 찾아간 집은 조용한 주택가 한복판에 제법 큰 3층집이었다.
연주회를 한다면 방문객들도 많이 오고 그들이 타고 온 차들도 마당에 주차되어 있어야 하겠는데 주위가 너무 조용하였다.
수상하다고 느낀 백건우는 아내와 딸을 택시 안에 남겨두고, 박인경과 함께 나와 주변을 살피다가
박인경이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2층에 만찬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백건우가 따라 들어가 보니 1층은 방문이 모두 잠겨있고 창문도 커튼이 내려진 상태였으며,
2층에는 갑부가 마련하는 만찬이라고 믿기 어렵게 과일접시 하나와 빈 접시 몇 개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3층에서 자기를 초청한 서양인이 아니라 동양남자 한사람이 나타났다.
그 순간 백건우는 그가 북한공작원임을 직감하고 쏜살같이 택시로 달려갔다.
그 동양인은 “wait, wait" 를 연발하며 따라오고 택시가 출발하기 직전 거의 택시의 문 손잡이를 잡을 정도로 접근하였다.
백건우는 그 택시를 타고 급히 그곳에서 빠져나와 <자그레브>에 있는 미국영사관으로 달려갔다.
그자가 바로 북한공작원 <허묵>이었다.
그때가 1977년 7월 31일 오후6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미국영사관의 문은 닫혀있었고, 도서관이 아직 열려있어 백건우 가족이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마침 잔무정리를 위해 남아있었던 미국외교관 한사람이 백건우 가족을 만나 사정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즉시 그들의 안전을 위하여 자기가 임시로 묵고 있는 호텔로 안내한 후 자정 무렵에 4층 416호실로 옮겼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누가 416호실의 문을 두드렸다. 백건우는 당황하여 그 미국외교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는 그가 묵고 있던 3층에서 4층으로 올라왔을 때 거기에는 동양인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416호실 앞에 서있는 것을 목격 하였다.
그중 한명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바로 며칠 전 오스트리아 건국기념일 리셉션에서 보았던 북한사람이었다. 그가 바로 <허묵>이었다.
그는 즉시 백건우에게 전화하여, 지금 북한사람들이 문밖에 와 있으니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그 미국외교관은 <크리스텐슨>이었고 그로부터 보고를 받은 우리 정보국 조직은
백건우 윤정희를 철저히 보호하고 파리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협조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그리고 북한사람들이 사라진 후에 그는 백건우 일행을 안전하게 공항까지 안내하고
파리 행 비행기 표를 구입하여 저들이 탑승하고 이륙하는 것까지 확인하였다.
北의 백건우 윤정희 부부 납치 미수 사건(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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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성남FC, 백현동, 정자동, 법인카드, 변호사비 대납, 대북송금, 돈봉투, 불법코인 사건도 주범을 꼭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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