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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황의 생각모음

[국민감사] 1970년 日 적군파의 요도호 항공 납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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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사] 1970년 日 적군파의 요도호 항공 납치사건 

[#이만갑모아보기] 김포공항에 휘날리는 북한 인공기?! 납치된 일본 요도호가 평양으로 간 이유는? | 이제 만나러 갑니다 512 회 
https://www.youtube.com/watch?v=81dC81GmUOE 

요도 호 사건(일본어: よど号事件)은 1970년 3월 31일 일본에서 적군파(일본적군의 전신) 요원 9명이 하네다 공항에서 
이타즈케 공항(板付空港, 현 후쿠오카 공항)로 향하던 일본 항공(JAL) 351편 여객기를 납치해 
승객 129명을 태우고 북한으로 도주한 항공기 공중 납치 사건을 말한다. 
요도 호 하이재킹 사건(よど号ハイジャック事件 요도고 하이자쿠 지켄[*])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1970년 3월 31일 오전 7시 33분경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후쿠오카 이타즈케 공항 행 일본항공 351편이 
후지 산 상공을 비행중에 일본도와 권총, 폭탄 등의 무기를 가진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었다. 
범인들은 남성객을 창가에 이동시킨 다음 가지고 온 로프로 이동시킨 승객들을 묶고 
일부는 조종실에 들어가 항공기관사를 인질로 하여 기장과 부기장에게 북한의 수도인 평양으로 향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기장은 "이 노선은 국내선인지라 북한에 가기 위한 연료가 충분하지 않다"고 하며 범인들을 설득했다(실제로는 예비 연료가 있어 충분히 평양까지 갈 수 있었다). 
그 후 납치된 항공기는 오전 8시 59분에 급유를 위해 이타즈케 공항에 착륙했다. 
경찰은 국외 도주를 차단하기 위해 항공 자위대 항공기가 고장을 가장하여 활주로를 차지하도록 하는 등의 공작을 펼쳤지만 
오히려 범인들을 자극하였고 초조해진 범인들은 서둘러 이륙할 것 요구했지만 기장의 설득으로 오후 1시 35분에 
여성, 어린이, 환자, 고령자 등 인질 23명이 우선 풀려났다. 

요도 호는 북위 38도선을 넘어갔으나 휴전선은 38도선과 일치하지 않기에 아직은 한국 영공에 있는 상태였다. 
또한 전술한 바로 미루어 볼때 요도 호는 이 당시 강원도 상공을 날고 있었다. 
북한 영공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부기장은 지시받은 주파수로 맞춰놓고 영어로 "여기는 JAL 351편" 이라고 무전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그 후 요도 호에 대해 "여기는 평양이며 진입 관제를 실시한다"라고 하는 무선이 들어왔다. 
해당 무선은 주파수를 134.1MC로 바꿀 것을 지시한 다음 왼쪽으로 선회하여 북위 38도선을 넘어 남하하도록 유도했다. 
이것은 한국 당국에 의한 것으로, 기체를 북한으로 향하지 않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범인들은 북한의 공용어인 조선어(문화어)는커녕 영어도 잘 몰랐기 때문에 한국으로 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서울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한 것은 오후 3시 16분이었다. 
소수의 대한민국 국군은 조선인민군 병사의 복장을 하고, 「평양 도착 환영」의 현수막을 내거는 등의 위장 공작을 실시했다. 
그러나 범인들 중 한 명이 영어로 여기가 서울이냐고 물으니까 주변의 있던 군인이 'yes'라고 대답하자 
여기가 평양이 아닌 서울임을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범인들은 비행기에 접근해 온 사람에게 이곳이 평양이냐고 묻자 그 사람은 평양이라고 답했지만 
범인들이 재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천리마 운동에 대해 묻자 상대는 답하지 못했고, 
이를 수상히 여긴 범인들이 김일성의 큼직한 사진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여 간파당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와 범인들은 영어로 교섭을 개시했지만, 
범인들이 대부분 영어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통한 교섭으로 변경되었다. 
이에 야마무라 신지로(山村新治郎, ja)운수성 정무 차관 등 일본 정부 관계자와 일본 항공 사원이 
일본 항공 특별기 편으로 4월 1일 서울에 도착해 한국의 정래혁 국방부 장관, 백선엽 교통부 장관 등과 함께 교섭하게 되었다. 

일본측은 범인들이 승객, 승무원을 풀어줄 경우 북한으로 갈 수 있게 해 줄 것을 한국측에 강하게 요구했고, 한국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특히 요도 호에는 미국인 승객이 2명 있어 북한으로 가게 될 경우 적대국의 국민인 이들이 
일본인들에 비해 가혹한 대우를 받을 우려가 커, 미국 정부의 압력도 있었다. 

북한측은 범인들의 무장 해제를 요구하여 범인들은 가지고 있던 무기를 비행기 밖으로 버렸는데 
모두가 장난감이나 모조품 등이었음이 밝혀졌고, 범인 9명과 승무원 3명, 야마무라 차관 등 총 13명의 신병은 북한측에 확보되었다.

4월 4일 북한은 '인도적 관점에서 승무원 3명과 야마무라 차관, 비행기는 일본으로 돌려보내되, 
비행기를 납치한 9명에 대해서는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는 형식의 발표를 통해 
납치범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우회적으로 표명했다. 

요도 호 사건
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B%8F%84_%ED%98%B8_%EC%82%AC%EA%B1%B4

대장동, 성남FC, 백현동, 정자동, 법인카드, 변호사비 대납, 대북송금, 돈봉투, 불법코인 사건도 주범을 꼭 잡아야 합니다.

[국민감사] 1970년 日 적군파의 요도호 항공 납치사건
https://cafe.daum.net/justice2007/Wy5y/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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